Saturday, March 11, 2017

후루사토에 대하여 생각함Ⅲ
Rock Culture를 통하여 생각함
 존레논의 노래I’m a greatest를 린고스터가 불렀다. 존레논은 말했다. 만약에 내가 불렀다면 모두 화를 낼 것이다. 린고가 부르면 논담 같이 되죠.
  어쩔 수 없네,
누가 뭐래도 (안 치환)
나는 도쿄 출신이며, 어느 시대에서서도, 근처의 이구치 할아버지들은 이구치는 도쿠가와보다 먼저 에도(江戸 형제의 도쿄)애 들어왔다고 말하시고 있다. 그것을 벌써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는 사람한테 말하지 말하면 그냥 자랑 이야기가 되니까 라 말하셨다. 그것을 술 자리에서 이야기하면, 여기는 에도가 아니야 에이 씨! 무사시노이야 에이 씨! 라 화를 내기 시작한 사람도 있었다.
미 아 네 요   고 마 워 요  이제부터 도 잘 부 탁 해 요PUFFY
그러나 별로 큰 차이는 없다. 무사시노보다 에도가 말하기가 편하지! 어느 쪽을 말해도 물리적인 가치관이므로, 고향은 생각하는 정서와 상관이 없다.
왜 화를 내? 대부분, 뭔가에 연애하고 있기 때문에 도쿄에 살고 있지. 나두 한국을 여행 했을 때가 그랬다. 동대문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남대문 시장에서 일본 사람과 맞 스치면 짜증이 났다.
모두 어딘가에 가면 좋겠어MODS
다 가라(엄 정화)
라 생각했다. 동대문을 연애하고 있었으니, 숭례문에서 불이 나왔을 때는 마음이 상하지 않았지만. 그런데 그 연애하는 마음과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야자와 에이키치가 라디오 프로에서 말했었다. 유명인이 되고, 비행기를 타고 히로시마를 지나 갈 때, 위에서 오줌을 누고 싶었다. 그러나 투어 때문에 히로시마에 와서 호텔 맨 위층 방에서 거리를 바라보고, 고등학교까지 졸업했구나 라 그리워했다. 이해해 응 이해해.
  나두 옛날, 휴가 때, 한국을 여행중, 택시의 라디오에서, 어느 나라가 미사일을 발사했다 라는 뉴스가 들어왔다. 그 때, 직장에 떨어지면 좋겠다 라 농담이라고 생각하는 힘든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도쿄는 고향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도쿄의 지명이 나오면 울렁울렁하다. 기숙사가 있는 중고를 다니고, 미대에 들어갔다. 운송 집에서 아르바이트 했고, 도쿄 오(5) 미대 관현악단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운반 도 담당했다. 도쿄의 미대는 거의 삼타마지구 (三多摩地区 도쿄 교외 쪽) 주변에 집중하고, 운송업에서는 도심부 주변, 교과서 부 독본 판매에서는, 도심 시바 방면이 담당이었다.
  삼타마 라면RC SUCCESSION 고 이마와노 키요시로이다. 그러나 그는 나카노 생이다.(신주쿠와 우리 집 사이의 지역) 어렸을 때, 쿠니타치에 옮기고, 도쿄도립 히노고교 졸업, 미우라 토모가주와 동급. 히노 이라고 들면 히노교라는 다리가 생각이 나서, 교외 시골 쪽이 생각이 나서 그리워 한다.
  초기 쯤에는 실제의 주소가 노래 제목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쿠니타치에 자전거 타고 가자 란, 처음부터 지명의 노출이 많았다
코슈가도(甲州街道)는 벌써 가을이지, 나는 오우메가도(青梅街道), 라멘 집이 많아서, 신주쿠에서 타나시까지 다 먹어 버렸다.
  타마란자카 多摩蘭坂 라는 언덕길, 코쿠분지 国分寺 와 쿠니타치 国立 를 연결하는 언덕길이며, 내가 다닌 미대 바로 가까이에 있었다. 더 붙이면 왜 쿠니타치 国立 라고 한다면, 코쿠분지 国分寺 와 타치카와 立川 사이에 있기 때문이다.
시영 그라운드라고 들면 코슈가도 甲州街道이나 国道16, 하치오지 八王子 부근이다.
노래 가사에는 없지만 그 것들과 함께 마치다 町田 사가미오오노 相模大野 미주호 瑞穂 , 그 당시는 폭주족이 우글우글 있던 길을 운전했고, 여러 정경이 생각이 난다.
나는 술을 도쿄에서 배웠다. 나는 이케부쿠로 池袋 였지만,
신주쿠 역 新宿駅 의 벤치에서 졸리다가
 키치조지 吉祥寺 쯤에서 오바이트 했고,
완전히 술이 개 버렸다.
눈물짓다 고 해도 아무 일도 시작하지 않다.
(이이코토 바카리와 아랴시나이 좋은 일만 일어난 게 아니다)
나 자신이 체험하 사실 같이 생각할 수 있다.
막차 타고 이 동네(쿠니타치 国立)에 도착했다.
어깨가 축 처진  정처 없이 돌아가는 길,
아무 변화가 없는 것이 생각이 나서
언덕길에서 멈춘다.
중안선 中央線 전철역이 등장하면 나는 약해진다. 코엔지 高円寺、아사가야 阿佐谷、오기쿠보 荻窪、니시오기 西荻、참을 수 없어지, 사랑스러운 지명들. 나의 고향이지요. 고엔지 高円寺 이나 吉祥寺 키치죠지 자주 걸어서 집으로돌아갔다. 스트레스와 실망감이 많아서. 마치 노래 가사와 똑같다. 그러나 나는 도쿄에서 태어나고 커졌구나 란.
  이직 있다. 14 , 친구와 石神井 샤쿠지이의 関越 칸에쭈 자동차도로 밑을 산보했다. 폭주족의 폭음이 밤의 조용함에 울려 피지 있었다. 그 시절, 라디오에서 사양한 노래가 흘려 왔다.
흠진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기 시작한다.
어디로 갈지는 모르면서.
(오자키 유타가 15의 밤)
나는 팬이 된지 않았지만, 15살이 되면, 지금보다 자유가 될 수 있는지 , 14살 떄, 계속 생각했다. 그는 練馬 네리마 출신이었나?
그 여자애 집 앞을 지나가면서
안녕 잘 가중얼거리고 휙 지나간다
어른 들은 마음을 버리라고 말하지만 나는 싫다.

결국,
자유를 잡혔다고 느낀 15의 밤
즉 진짜 자유가 아니다 란 것을 자신이 가장 알고 있다.

더 없지, 이 정도로 끝내려구. 고향과 도쿄를 Rock로 예쁘게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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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의 팬이 되어서 듣는 것과 다른 감각이 나에게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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